8. 잘하지 못 할 거란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잘하고 싶지 않아도 나보다 먼저 익숙한 것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나를 향해 짧게 아는 척을 하는 피터를 향해 의식하지 않은 미소를 흘리며, 쏟아지는 조명 아래 선 순간 나의 시간은 뒤틀리는 듯 제멋대로 움직였다. 한 때는 손짓하나, 눈짓하나가 전부 의미였던 나의 시간이 저만치 나를 마...
로코 아님 뭔데, 이거. 그 순간 번쩍 눈이 떠진 건 잠에서 깬 것도, 각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절체절명의 순간 촌각을 다투는 치열한 현장에서의 생존 본능 같은 것이었다. 뭉근하게 끓여진 크림스프 속을 둥둥 떠다니는 듯 적당히 포근하고, 기분 좋게 따스했던 공간 밑이 순간 와르르 무너지며 나를 어딘가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살기 위해 바짝 힘이...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이면 2/2 나 너 좋아해, 동호야. 황민현은 생각보다 골 때리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말이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세상에 흘러넘치다 못해 흔해 빠져서, 어느 순간엔 더 이상 설렐 것도 없는 건조하고 마른 문장을 나는 꼭 한 번은 되물어 확인해야 했다. 내가 너를 좋아해, 동호야. 막 여름이 시작 되려 하고 있었다. ...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이면 1/2 다 내가 먼저인 줄 안다. 몇 없지만 나와 황민현의 사이를 아는 그 몇의 사람들은 다 내가 먼저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 말도 안 되는, 그러나 또 말이 아주 안 되는 건 아니라서 6년을 끌고 온 관계를 강동호가 시작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거 이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네. 저기 근데 대리님." "네?" "제가...
그런절기 첫키스는 열여섯 겨울이었다. 정확히는 열다섯과 열여섯의 경계에 있었던 그야말로 고위험군의 반항 인자가 가득했던 시절의 겨울은 내 앞으로의 모든 삶이 그저 나락처럼 느껴지는 시기였다.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나는 열심히 하지 않으며 원했고, 열심히 하지 않아놓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마치 세상의 거대한 음모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야...
그런 절기 1/2 매미 울음소리가 교실의 소음을 간단히 물리쳤다. 밤도 낮같아서 밤새 울어댔으니 한낮엔 곤히 잘 법도 하건만 밤잠을 설치게 만든 것이 분하다는 것 마냥 악을 써대는 것이 열린 창문을 향해 고스란히 네모난 교실 안을 채웠다. 계절은 한창인데, 6월이라는 숫자를 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30일의 숫자는 네모난 공간 안에 차가운 바람을 허용하지 않...
한 때는 내가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강하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할 수 있었고 가지고 싶은 것은 일단 가져야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생각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정말 그럴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욕망이었다. 내 말 한 마디에 수 십의 무리가 흔들리고 내 웃음 한 번에 수 백의 사람들이 열광하며, 내 눈물 한 번에 수 천의 사람들이 ...
너의 사소함에게 - 사실은 작지 않은 것에게 세상의 모든 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긴 날이 있었다. 이제 겨우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명분을 얻었을 때, 내 세상은 오로지 내 시야가 전부였다. 세상은 넓고, 넓은 그 속에서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을 충분한 학습을 통해 알고 있었음에도 그때의 나는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 수...
그냥 아는 사이 비가 올 듯 말 듯 한 하늘을 노려보듯 서 있었던 아침을 떠올렸다. 백이면 백 흐린 폼새를 보고 우산을 쥐고 나오면 하늘은 보란 듯이 개기 마련이었다. 이건 살면서 얻은 아주 정당하고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한 결과였기에, 이미 두 발을 다 끼워 넣은 신발을 벗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지 앞에서 김종현은 과감하게 돌아서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강수...
연애는 그 외의 설 사람들은 말한다. 멀쩡하게 생겨서 도대체 왜냐고.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머리통이나 가슴통이 아닌 하물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아닌 얼굴을 보고 판단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도 이상하면서도 평범한 일이다. 그 평범함에 딱히 반항할 만큼의 호기나 정력이 없는 나 역시도 이렇게 생겨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6. 배우는 연기를 했다. 텅 빈 곳에서 마치 제가 누구인지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은 얼굴로 타인의 삶을 잘도 이야기했다. 저보다 한참 어린 사람도 되었다가, 시한부가 되기도 하고 이미 죽은 이가 되어 보편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중 어느 것도 진짜 배우의 얼굴은 아니었다. 제가 아닌 허구의 타인을 연기하는 배우의 진짜 얼굴을 아는 이는 어쩌면 단...
2/2 그냥 흔한 이야기다. 좋아해서 연애를 했고,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헤어졌다. 이유는 구질구질해서 말할 수 없지만 변명을 하자면 그것이 그때의 우리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을 했다. 헤어지자 말을 하는 나를 납득하지 못하는 황민현의 앞에서, 그때의 내 말이 농담이라 말해주길 바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황민현의 앞에서 끝내 그것이 그냥 해 본...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